2017년 12월 25일 월요일

12월 모임과 1월 20일 신년 모임 안내

프닉스 연구위원들과 정치경제연구모임 회원들 그리고 연구소 후원회원들께 올 한해 동안 많은 참여와 관심을 가져주신데 대해 감사인사를 드립니다. 앞으로도 정치경제학의 발전과 우리 사회의 진보를 위해 함께 하는 즐거움과 영광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한해동안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1. 일시: 12월 16일 토요일 오후 3시-7시
2. 장소: 프닉스 사무실
3. 참석자: 정윤광, 곽태진, 김장민, 홍영두,  하태규, (뒷풀이) 송종운, 외 총 8명
4. 발표와 토론

 가. 그람시 사상에 나타난 사회변혁과 교육의 관계(곽태진)
   1) 발표 내용(첨부파일 참조)
   2) 질의응답과 토론 내용
    - 그람시 사상에서 정당교육의 역할(피지배대중에 대한 의식화 교육)의 중요성에 비추어 사회교육의 역할 혹은 위치에 대한 견해는? ===> 사회교육이 중요한데, 당대에 정당교육만큼 중요한 사회교육이 없었지만, 노동자교육운동이 있었다. 이 노동자교육도 두 가지 방향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하나는 자유주의 관점의 인문교양교육을 강조하는 견해로서 체제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역할을 했다면, 다른 하나는 사회주의 의식화 교육으로서 선전을 중시하는 관점도 있었다.

  - 보울즈 진티스의 견해 등 네오마르크스주의 교육론과 그람시의 관계는? ===>네오 마르크스주의의 대표자들은  애플, 지루, 맥라렌 등인데, 제도권 학교를 저항의 공간으로 보는 관점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반해, 발제 내용과 같이 그람시의 사상은 재생산 기능을 더 본질적인 것으로 보기 때문에 이에 대해 부정적으로 본다. 이 논문의 취지는 그런 네오마르크스주의 교육론의 잘못된 그람시 인용을 비판하는 것에 있다. (보울즈 진티스는 네오마르크스주의 일반과 달리 학교교육의 저항공간이 아닌 재생산 측면을 강조했다고 저자는 서술했음)

   - 진지전과 교육의 관계는 어떠한가?===> 진지전에서 진지는 어떤 물리적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 계급 역관계를 의미하고 구체적으로 노동자계급 헤게모니가 관철되는 피지배계급(쁘띠 부르주아계급 포함)일반의 통일전선 혹은 공동전선의 형성을 목표로하는 진지를 의미한다. 그래서 학교교육의 역할은 부정적인 반면 앞서 논했듯이 사회교육, 정당교육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 진지전을 사회문화적 영역에서 대항헤게모니를 형성하는 싸움으로 이해하는 통상적 견해와 다른 것 같은데, 그 논거를 분명히 제시하지 않는 듯하다 ===> 75-76쪽 각주 8번에서 서술했듯이, 강성훈의 견해를 인용하면서 필자도 동의한 내용인데, 필요하다면 앞으로 추가적 연구를 통해 그 논거를 밝히겠다.===>진지전 개념도 그람시의 독창적 견해라기보다 당대 1차대전에서 군사전략으로 실존했던 참호전과 기동전의 구별 (예를 들어 <서부전선 이상없다>에서 묘사된 지루한 소모전으로서 진지전을 떠올릴 수 있다)을 혁명전략으로 도입한 독일 사회주의자들의 논의에서 이미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용법이었다. (레닌의 헤게모니 개념이 노동계급의 혁명전선에서 주도권을 의미했고, 그람시가 이를 수용하며 발전시켰듯이, 진지전과 헤게모니의 의미를 공동전선 혹은 통일전선의 형성이라는 관점으로 해석하는 것이 그렇게 이상한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 저자는 자본주의 내에서 제도학교 교육이나 기타 (광의의국가)윤리적 국가 혹은 시민사회의 교육이 가지는 지배이데올로기 재생산 역할을 강조하면서 유일하게 대항이데올로기를 형성할 돌파구로 혁명정당의 정당내 교육, 특히 정당 외부 피지배대중에 대한 교육을 제시하는 것으로 그람시 사상을 해석했다. 이에 대해 잘 이해되고 동의할만하다. 다만여기서 그람시는 교육자와 피교육자를 구분하는 카우츠키, 레닌 등 제2인터내셔날의 지배적 견해를 반복한다고 보인다. 마르크스는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 3에서 교육자와 피교육자를 구분하면 안되고 자기변화와 환경 변경을 일치시키는 혁명적 실천 즉 인간 스스로 교육하는 실천을 강조했다===> 지적에 대해 동의하며, 그람시도 교육자와 피교육자를 구분했다는 점을 인정한다. 레닌은 혁명 전에 특별한 교육론을 제시하지 않았지만, 혁명 후에 동일하게 교육자와 피교육자를 구분하는 논의를 제시하고 있고 부인 크룹스카야도 마찬가지다. 칸트의 역사철학에서도 교육자와 피교육자를 구분하고 있다. 요즘 비판적 실재론을 연구하고 있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마르크스의 문제의식 그렇게 구분한다면 교육자는 누가 교육할 것인가? 교육할 사람이 없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스스로 교육해야 한다는 점 즉 교육자와 피교육자를 구분하면 안된다는 문제의식을 교육학에서 연구하는 논의들은 드물다. 이에 대해 앞으로 연구할 계획이다.

  - 현대는 당도 대중정당이고, 한국사회에서 운동권이 개입하는 시민교육이 활발한데, 이것을 어떻게 보아야 하나?===> 학계에서는 citizenship 교육이라고 해서 논의하고 있다. 한국에서 이런 시민교육에 대해 자유주의 접근이 있는 것 같다. 이들에 대한 비판과 노동자 혹은 변혁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문제를 앞으로 과제로 생각한다.    

나. 러시아 혁명과 대안 민주주의(하태규)
 1) 발표내용(첨부 파일 참조)
 2) 토론내용
   - 공동점유에 근거한 개인적 소유를 대안 민주주의와 연결한 점은 높이 사고, 별도 논문으로 작업할만하다 ===> 기존 논문들에서 논의한 바 있다(하태규 2015, 2016).

   - 서론이 너무 포괄적이라서 제기된 문제들이 너무 많다. 하나로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겠다 ===> 문제제기에 동의하지만, 대안 민주주의가 혁명이후 사회주의 건설 실패의 제일 원인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이와 연관되어 다른 요소들을 필수적으로 논의해야했다. 이에 대해 서론에서자세히 언급하거나 각주로 처리하기에도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개요만 언급하는 수준으로 넘어갔고, 본문에서 대안 민주주의에 집중했다.

  - 러시아 혁명이 곤경에 빠진 조건들을 크게 3가지 경제적, 역사적 조건(노동자계급이 5%에 불과하다는 점 등), 차르 전제 체제의 유산, 제국주의 세력의 간섭과 압박으로 볼 때, 이 점들을 너무 간과하고 러시아 혁명이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는 식으로 서술한다는 느낌이 든다 ===>이런 유사한 조건들은 서론에서도 언급했듯이 모든 혁명들이 부닥칠 조건들이라고 볼 수 있다. 새로운 혁명도 나름의 사회경제적, 역사적 조건의 제약을 받게 될 것이고, 이전 체제의 유산의 중압을 느끼며 새로운 건설을 해야하고, 국제적 압박을 견디고 떨쳐내야 한다. 이런 조건들 속에서 이들을 극복하면서 혁명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는 것이 혁명주도세력의 역할이고 특히 인간의 변화와 환경 변경을 일치시키는 혁명적 실천의 매개로서 대안 민주주의 실천이다. 러시아 혁명은 이런 측면에서 실패했기에 사회주의 건설도 실패했다는 점을 서술하였다.

  - 계획경제를 서술할 때, 러시아 계획경제가 처음부터 위로부터 계획이었는지 아니면 처음에 이론적으로는 아래로부터 계획을 상정했지만 실천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위로부터 계획으로 돌아섰는지에 대해 궁금하다. 왜냐하면 중국, 쿠바 등은 현실에서 그렇지 않을지라도 아래로부터의 계획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 참여계획경제론 등 거의 모든 연구들이 혁명 러시아에서 계획은 처음부터 위로부터의 계획이었다고 평가한다. 이번에도 <공산주의 abc> 등 여러 저술들에서 찾아봤지만, 계획은 처음부터 위로부터 계획이라는 사고가 지배했다.

  - 공산주의 첫째 국면에서 국가와 계급이 소멸한다는 주장을 발리바르가 스탈린의 오류라고 했다. 공산주의 첫째 국면에서 자본주의 잔재가 남고 그래서 국가와 계급이 남는다는 점, 피티독재로서 공산주의 첫째국면, 사회주의를 <고타강령비판>에서 읽을 수 있지 않는가? ===> 본문에서도 강조했듯이 이 부분에서 마르크스와 레닌의 차이가 분명하다. 공산주의 첫째 국면에서 자본주의 잔재가 남는다는 것은 레닌이 잘못 해석했듯이 국가나 계급이 남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본주의 문화, 부르주아 권리(의식)이 남는다는 의미로 <고타강령비판>에서 마르크스가 적고 있다. 그래서 이 국면에서 분배 원리는 일한 시간만큼 분배한다는 것으로 부르주아 평등한 분배의, 자본주의 정신의 분배의 원리가 관철된다. 하지만 이런 부르주아 평등한 분배는 자본주의 평균노동시간 척도가 관철되는 가치법칙 지배의 원리(동일 노동시간에서 더 생산성 높은 자본과 노동은 더 많은 분배를, 더 생산성 낮은 자본과 노동은 더 적은 분배와 결국 도산과 실업으로 귀결)를 넘어선 실제시간 척도의 자유로운 노동의 원리(일한 시간만큼 분배받기 때문에 더 생산성 높고 더 낮고를 따지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실제 시간으로 분배하기 때문에 노동 그 자체를 자유로운 노동, 자기 실현의 노동으로 접근하는 원리)로서 평등의 내용과 형식이 일치하는 분배가 실현된다. 여기서 국가나 계급은 당연히 소멸되는 것이 전제 된다.

   - 논문에서 내전과 반혁명이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다. 이런 중요한 문제를 배제하고 혁명이 실패했다는 점을 서술하면 혁명에 대한 우파적 비판과 유사해진다.===>지면의 제약상 내전과 반혁명에 대한 투쟁을 서술하지 못한 점은 한계라고 인정한다. 하지만 내전과 반혁명의 서술을 거치더라도 결과로서 대안 민주주의와 사회주의 건설의 실패는 분명하다. 각주 23에서 최진석도 언급했듯이, 국가와 당에 의한 소비에트의 전도는 외인론이 아니라 내인론으로 설명해야 한다. 내전의 승리는 바로 노동자와 농민의 지지와 이들의 적군으로 참여 덕분에 성취되었다. 내전 말기에 노동자들과 농민들이 계급적 요구, 민주주의 요구들이 분출하고 파업과 반란으로 이어졌는데, 대표적으로 크론슈타트 반란의 핵심 요구가 (사실상 형해로 변하고 폐지된) 소비에트의 부활이었지만 이를 2천명 살해와 함께 진압하는 것으로 처리했다. 각주 27의 크룹스카야 회상에서 보듯이 2월혁명 이후 10월 혁명 사이의 노동자들은 그야말로 혁명적 실천, 자기스스로 해방을 하는 주체로서 발전하고 있었다. " 어디서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서 열띤 주장을 하고 최근 사태를 토론했다그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 없는 토론이었다!”  우리가 87년 등 주기적으로 분출한 대중 반란과 승리한 정세에서 느꼈듯이 대중의 혁명 열기는 대단하다. 대중은 이 국면에서 노상 정치문제를 토론하고 스스로 답을 내려고 한다. 러시아에서 당시에 "해방 축제들" "정치 집회들"이 끊임없었다. 이들은 이 과정에서 자기의식화되고 조직화되고 그 정점으로 스스로 무장한 적위대를 구성했고 무장봉기를 일으켜 승리했다. 이들의 이런 혁명열기를 더욱 발전시키는 것이야말로 혁명의 건설, 사회주의 건설의 지름길이고 이것의 구체화는 대안 민주주의의 실현이었다. 이것의 정반대가 볼셰비키가 선택한 길이었다 ===> 크론슈타트 반란은 반혁명과 연계되었다는 혐의가 있다 ===> 이런 조건 조차도 대안 민주주의(총회와 평의회)에서 안고 발전시킬 수 있었다. (2월혁명에서 10월혁명까지 볼셰비키가 했던 노선과 역할이 그랬다. 당시 노동자 대표 소비에트는 노동자대중의 빵, 토지, 평화 요구를 제대로 수용하지 않고 임시정부를 지지했다. 이에 대해 볼셰비키는 대중 선전선동을 통해 노동자 대표 소비에트를 노동자 대중의 혁명 요구를 대변하는 사람들로 바꾸는 역할을 했다. 이것이 완전한 (총회)대안 민주주의에 비해서는 여전히 제한적이지만 당시로서는 최대한의 민주주의 방식이었다. 하물려 집권한 생태에서 더욱 더 대안 민주주의 방식으로 운영하는 것이 왜 힘들었겠는가. 문제는 대안 민주주의 관에 있었다)

   - 농민을 (강제적으로라도) 집단농장으로 결집시키는 방안 외에 현실적 대안이 있었겠는가? ===> 이 문제에 대해서도 지면의 한계상 한 문단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지만, 당대의 농촌코뮌과 협동조합이 사회주의 이행을 위한 형식이라는 문제의식이 없었다는 점이 문제였다. 이들을 민주적으로 전국연합으로 형성하는 대안이 가능했을 것이다. 물론 시간이 더 걸리는 민주적 토론과 집행을 조직하는 대안 민주주의를 적용해야 했는데, 이런 문제의식이 없었다. 협동조합을 사회주의 이행 형식으로 본 말년의 레닌과 농촌코뮌을 그런 이행 형식으로 본 마르크스의 논의는 전부 무시되었다.

   - 논쟁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소련을 생산양식 차원에서 국가자본주의로 규정할 때,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에 특별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 정치학 사전 같은데서 국가자본주의는 정책의 하나로 보지 하나의 생산양식으로 보지 않는다. 중국, 베트남 등도 그렇게 규정한다. ===>(이 생산양식으로서 국가자본주의 논쟁은 뿌리 깊다. 소련을 3가지 체제(타락한 노동자국가(사회주의), 집산제, 국가자본주의)로 설명하는 논쟁을 참고할 수 있다. 필자는 이중에서도 본문에 인용했듯이 샤토파이헤이의 내포적이 아닌 외연적(절대적 잉여가치생산)포섭 자본주의론 서술을 기본으로 헤인즈의 소련붕괴를 이윤율 하락원인설과 결합하여 설명하였다)

다. Critique of Mosley's monetary theory(정윤광)
  1) 발표내용(첨부파일 참조)
  - 이전 사회경제학회 발표 논문을 모슬리 최근 논문(2011)을 반영하여 수정한 논문으로 해외에 투고할 예정이다. 

  - 주요내용은 모슬리의 화폐이론을 비판하는 것인데, 마르크스의 상품화폐론에서 화폐를 가치척도, 유통수단, 화폐로서 화폐 기능을 서술하는 것은 상품으로서 화폐가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모슬리는 현대 불환지폐도 동일한 가치척도, 유통수단, 화폐로서 화폐(지불수단, 축장수단, 국제결제) 역할을 한다는 점을 복잡한 수학공식으로 증명한다. 본 논문은 이에 대한 비판이다.

  2) 토론내용
   - 형식적 측면에서 abstract를 전반부에 놓으면 좋겠다. 3중(영어, 화폐이론, 수학)으로 어려운 논문에서 도입부에 요약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 투고용 논문인데 그 형식을 따랐기 때문에 후미에 있다.

  - 일부 문장이 문법적으로 오류가 있다. 예를 들어 서론 마지막 문장의 마지막 절은 주어 술어 관계가 의도와 달리 틀린 내용으로 구성된다. ===> 이전 논문을 수정하는 과정에서 그런 것 같다. 앞으로 반영하겠다.===> 문장들이 만연체로 된 부분들이 있는데 짧게 끊어 주면 좋겠다. 한국 사람의 영어 문장은 되도록 짧게 쓰는 것이 실수를 방지하는 지름길이다.

   - 내용에서 마르크스 시대에 불환지폐가 (상품)화폐의 법칙을 폐기하고 뒤집는다고 서술한 부분과 현대 불환지폐가 그렇게 화폐수량설을 따른다는 점을 동일한 부분으로 설명하면서, (모슬리 같이 복잡한 수학 없이도) 마르크스의 논의에서 바로 현대 불환지폐에 대한 논의를 도출할 수 있다고 필자는 주장한다. 하지만, 마르크스 시대 불환지폐가 유통수단으로서(상징화폐로서) 유통될 때 항상 (상품)화폐의 운동법칙을 폐기 하는 것이 아니라 예외적으로 너무 많은 지폐가 발행될 때 그렇다고 마르크스는 설명한다.(물론 이 너무 많은 정도가 얼마인지의 논쟁점은 있다)  그래서 유통되는 모든 상품들의 총가치가 (화폐의 회전속도를 반영하여) 유통에 필요한 화폐량을 결정하기 때문에 이보다 넘치는 화폐는 화폐수량설 같이 화폐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축장된다. 그래서 화폐량이 화폐가치를 결정한다는 화폐수량설은 예외적으로 (유통에 너무 많은 지폐가 발행될 때만) 작동한다. 이런 예외에 관한 마르크스의 서술을 현대 불환지폐의 법칙에 관한 서술로 바로 등치하는 것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이런 예외성에 대해서 본문에서 언급했다.

   - (불환)지폐와 (불환)신용화폐는 마르크스의 용법에서 동일한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다. 지폐는 국가가 외생적으로 무가치한 것을 강제로 통용시키는 것인 반면, 신용화폐는 상인들 간의 거래관계에서 내생적으로 발생한 신용증서(어음)가 유통되면서 화폐역할을 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마르크스 당대의 은행권은 은행의 요구불 어음(기일이 없이 제시하면 즉시 금을 양도해야하는 증서)으로서 신용화폐였다. 현대의 은행권은 그렇지 않고 국가가 강제로 통용시키는 불환지폐다. 이 부분에 대해 모슬리가 마르크스와 다르게 용어를 사용하는 것 같고 그래서 모슬리 전체 논지를 어떻게 이해할지 헷갈린다===>이 부분에 대해서도 모슬리 자신이 언급했고 각주6에서 인용했다. 

   - 결론에서 마르크스 시대의 불환지폐가 유통수단으로서 상품의 가치를 "반영"한다고 마르크스가 언급했듯이, 현대 불환신용화폐도 상품의 가치를 "반영"하고 그래서 가치척도와 지불수단, 축장수단, (달러 등) 국제화폐로 사용될 수 있다는 논리는 문제가 있다. 당대에 무가치한 불환지폐가 상품가치를 "반영"할 수 있었던 것은 (상징화폐로서)유통수단으로 사용되었기에 그랬던 것이고 원래 가치를 가지지 않았기에 가치척도나 화폐로서 화폐의 역할은 할 수 없었다. 너무 많은 지폐가 범람하여 인플레를 유발한 것은 예외였다. 이때에 (화폐로서 화폐역할은 물론이고) 가치척도의 역할을 했는지는 논쟁적이다. 이런 조건에서 현대 (불환)신용화폐를 마르크스의 불환지폐의 가치"반영"론에서부터 가치척도, 화폐로서 화폐 역할을 찾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를 (불환지폐가 통용되기 전의) 관습의 역할과 국가의 강제유통을 포함하더라도(이런 설명은 많은 논자들이 시도한다) 여전히 무가치한 지폐가 가치척도로 작동하는 사실에 대한 명확한 설명을 하지는 못한다. 이런 결론을 근거로 모슬리의 수학공식을 우회하는 번잡한 설명을 비판하는 것이 이 논문의 논지인데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전 논문에서 마르크스 논의나 기타 현대 지폐의 가치척도에 관한 논의들을 생략하고 모슬리의 설명의 한계에 초점을 맞추어 재구성한 것이다. 이 부분에 집중하여 평가할 필요가 있다.

4. 1월 정치경제학연구모임(안내)
 가. 일시: 1월 20일 토요일 오후 3시
 나. 장소: 프닉스 사무실
 다. 주제: 신청 받습니다.

5. 정치경제학연구소 피닉스 연구위원 총회와 신년회(안내)
 가. 일시: 1월 20일 토요일 오후 6시
 나. 장소: 프닉스 사무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