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24일 수요일

3월 세미나 결과와 4월 세미나 안내

 1. 일시: 3월 20일 토요일 15시-18시

2. 장소: 프닉스 연구실/구글 Meet 병행

3. 참석자: 김경아, 김민정, 김0식, 김장민(온라인), 임0빈(온라인), 하태규, 정강산 총 7명

4. 발표와 토론

가. 한국 '코뮨주의'이론에 대한 방법론적 비판

1) 발표내용: 전번 첨부한 발표문 참조

2) 토론내용:

코뮨 이론가 이진경 박영균이 동일한 경향인지 모르겠으나 그런 경향으로 판단하며 종합적 비판을 하신거 같다. 맑스적 방법에서 포스트 주의들에 대한 비판은 기본적으로 동의하나 논문 자체로서 든 인상은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학위논문을 보면 달라지겠으나 요약본으로 봐서 그런지 판단의 근거들이 정확히 보이지 않아 불친절한 거 같다. 대중적인 수준보다는 학술적 대상을 가진 거라, 보다 각주나 출처등을 엄밀히 해주셨으면 좋았을듯 하다. 또 하나는, 맑스적 방법을 대비한 비판으로 공감이 되면서도 그것이 내재적 비판인지 외재적 비판인지를 봐야할거 같다. 이

들 나름으로는 기존 마르크스주의의 한계들을 지적하며 스스로 여러 문제들을 청산했다고 자부할텐데, 그것을 맑스적 관점에서 비판하게되면 싸우자는 것처럼 될것. 외려 그들 자신 자체의 모순을 비판하며 내재적 비판을 시도하는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덧붙여 사회학이나 사회철학 부문에서 비실론으로 맑스 개념을 확장한 것은 맞다. 헌데 여기서는 비실론이 너무 전제되어 있어서, 외려 비실론으로 충분한가 하는 질문을 할 수 있을 거 같다. 즉 비판적 실재혼을 거쳤을때 항상 옳은 실재가 보이냐는 것이다. 

예컨대 노동가치론과 같은 것을 맑스적 방법론 없이 비판적 실재론으로만 찾아낼 수 있는가 물으면, 그건 아니라는 것. 헌데 여기서는 양자가 거의 평행하게 전제되어 있기에. 양자의 위상적 차이는 잘 보이지 않는듯 하다. 암튼 비실론에 역사유물론이 없지 않느냐는 질문을 할 수 있을 거 같다. 또 상품의 시장가격 부분과 관련해서도 조금 혼란이 있는 대목이 보인다/ 동일성 비판을 한편으로 주요 기획으로 갖는 포스트구조주의자들은 정작 가장 강력한 동일성을 만들어내는 상품의 동일성을 비판하는 데에서 멀어졌다는 점에서 논문의 기본 취지에는 동의한다. 

헌데토대와 상부구조라는 마르크스주의적 도식을 보다 충실하게 염두에 둔다면, 루카치 혹은 제임슨이 했던 방식과 같이 '코뮨주의'이론 또한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특정 국면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이데올로기로 조명하는 것이 가능할 듯하고, 이런 방향에서 상론되었을때 이들이 보다 구체적으로 비판될 수 있을 것 같다. 예컨대 제임슨은 탈근대의 문화적 현상들을 '후기자본주의'문화적 대응물이라 보며 상론했고, 헌데 여기서 비판은 다소 외부적인 비판이라는 인상이 든다. 또한 가치론으로부터의 후퇴를 비판하는 것이라면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자들(실재론적 혹은 실체론적 입장에서 벗어나, 포스트구조주의적 비판들을 일부 수용하고 구성주의적이거나 정치철학적 방법론을 채택한 무페 라클라우, 랑시에르, 발리바르 등)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코뮨주의 이론'을 비판하고 계시지만, 사실상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구조주의 등을 아우르는 보다 넓은 범위의 사회현상을 비판하고자 하시는 듯한데, 굳이 '코뮨주의'로 대상을 한정할 필요가 있었는가?/ 칸트를 일종의 반실재론으로 규정하셨는데 사실 물자체가 있다라는 것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는 실재론이기도 하잖나. 또한 방법과 방법론을 구분해야 하지 않나. 방법론 자체는 메타이론이라 누구나 전유할 수 있기 때문. / 젊은 세대가 이 포스트주의를 좀 객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보다 친절하게, 그들을 대상으로 방법론을 달리해서 한번 본 논지를 전개해보면 좋겠다./ ---박영균 이진경 모두 다르다. 고병권은 이진경과 활동을 계속했고 박영균은 결이 다르다면 다른데, 그들은 일단 포스트구조주의 등에 기대고 있다는 점에서 같은 경향으로 포괄 될 수 있다고 봤다. 

발제문은 좀 불친절하지만 논문은 말씀하신 근거들이 보다 상세하게 적시되어 있다. 과학방법론은 크게 3가지다. 어떻게 과학적인 사고가 가능한가. 실증주의, 이를 비판하며 나온 협약주의, 이들을 비판하며 나온 초월적 실재론. 나는 여기서 맑스를 통해 코뮨주의자들을 비판하려 한 것이라기보다 실재론의 방법론을 통해 코뮨주의와 맑스쥬의의 방법론들을 검토해보고자 한 것이었고. 방법론에 대한 비판이야말로 내재적 비판이 맞다고 생각한다. 별개로 가치론의 몇몇 구절의 서술들에 관해서라면, 정치경제학자가 아닌지라 관련해서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 또, 이들 코뮨주의 이론가들을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특정국면에서 나타난 필연적인 이데올로기로서 조명하는 것은 크게 의미있는 작업이라 생각한다. 

아직 본인은 그런 시도를 할 준비가 안되었으나 언젠가 그런 작업을 해보면 좋겠다고 느낀다. 더불어 내가 논문에서 비판하는 내용 자체는 한국의 코뮨주의보다 훨씬 큰 대상들(포스트맑스주의 포스트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 등등)인 것이 맞다. 헌데 그 모든 맥락을 정리하고 상대하는 것은 쉽지 않았기 때문에, 영역을 한정했던 것이다. 칸트가 반실재론자가 아니었다고 보는 시각에 대해서는, 그럴 수도 있으나 중요한 것은 그가 논할 수 있는 대상을 오직 자연과학에 한정했고, 인간과 관련된 부분은 말 할 수 없는 것으로 제한했다는 것이다. 그외 제언들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수용할 수 있을 듯하다.


나. 코로나 19, 생태를 묻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적 질문

1) 발표내용: 전번 첨부한 발표문 참조

2) 토론내용: 기본적으로 많이 배웠다. 사소한 부분인데, 산업화된 농업, 공업화된 농업 등이 인용구에서 구분되는데, 다른 개념인가 싶어 혼란이 있을 듯하다. 먹거리와 먹을 거리를 따로 쓴 부분에서도 마찬가지다. 보다 독자를 배려하여 통일하고 정리하면 좋겠다. / 언젠가 마르크스주의를 통해 여러 생태 담론들을 내재적으로 비판하는 작업을 하려고 마음먹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작업을 봐서 반갑다. 논문과 별개로 여쭙고 싶은것은, 에코모더니즘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에 대한 혼란과 관련된 것이다. 

에코모더니즘은 기존의 과학적 성취와 발전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생태적 전환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며, 생태 자체를 실체화하는 논의들과는 스스로를 구별시킨다. 그런 측면에서 몇몇 대목은 마르크스주의와도 공명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마르크스 또한 기존 생산력이 가져다준 풍요를 부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에코모더니즘과 관련하여 쟁점은 마르크스주의를 프로메테우스주의로 볼 수 있느냐는 것. /--- 여러 코멘트 감사히 잘 받았다. 우선 여기서 발표한 내용은 최종본이 아니다. 교열 교정을 거쳐 학술지에 게재될 예정이다. 거기서 말씀하신 몇몇 용어들은 수정되었을 것이다. 질문에 답하자면, 에코 모더니즘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모더니즘에 대한 입장이다. 근대성의 문제는 기든스나 울리히 백을 들 수 있는데, 이들은 탈근대론은 아니지만 근대성과 자본주의의 문제를 깊게 보지 않는다. 

근데 발전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에코를 할 수 았다는 주장은 빌게이츠의 주장(베스트 셀러가 되어 생태이슈에 영향력을 크게 미치고 있는<기후재앙을 피하는 법>과 관련하여)과 완전히 겹친다. 결국 우리는 에코모더니스트들이 근대성을 어떻게 정의하는가를 봐야하는 것. 마르크스주의적 견지에서 근대성은 생산관계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우리는 에코모더니즘을 에코자본주의로 되지 않는 선에서 견인할 필요가 있는 듯하다.


5. 4월 정치경제학 연구모임 안내

가. 미정(신청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