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31일 금요일

7월 세미나 및 8월 29일 세미나 연기 안내


1. 일시: 7월 18일 토요일 오후 3시-6시
2. 장소: 프닉스 연구실
3. 참석자: 김승조, 김장민, 김민정, 김재원, 원영수, 정강산, 하태규, 박석삼 총8명 
4. 발표와 토론 내용
 가. 사라지지 않는 지표로서의 생산양식: 동시대 예술의 작업 경향의 조건에 관하여(정강산)
  1) 발표 내용(첨부 파일 참조)
  2) 토론 내용

  -역사유물론이란 토대를 반영하면서도 상황을 반영하는 인식이라는 점을 보다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설득하는 대목이 상론되면 좋을 것 같다. 이와 관련하여 인간의 실천과 사회적 관계가 실재임을 강력하게 주장할 필요 또한 있지 않을까. 나름대로 서술한 대목들이 있지만 보다 찬찬히 풀어내는 과정이 있어야 할 거 같다.- 자본주의적 발전 속에서 필연적으로 네덜란드의 풍경화 및 프랑스의 인상주의 등이 발생했다는 대목과 관련해서, 그렇다면 왜 영국과 스페인 등 동시기의 다른 국가들에서는 그러한 흐름이 등장하지 않았는지 역시 상론해야하지 않나 싶다. 결국 현실 속에서는 자본 일반이 아니라 해당 국가의 제도, 관습, 규범, 문화, 전통 등 구체적이고 다양한 힘들의 작용과 반작용이 있지 않나. 이들에 대한 서술을 중심으로 논의를 푸는게 좋지 않았을까 싶다- 논문에서 상론한 각 작품들이 자본주의적 물화의 반영이라는 주장 자체는 충분히 동의할 수 있지만, 그것이 명확히 증명되거나 검증될 수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든다- 물화와 물신주의를 구분해서 쓸 수 있어야 할텐데, 인간들의 사회적 관계의 산물 자체를 숭배하는 수준이 물신주의라면, 물화는 각 단위들이 서로에게 유리된 것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계, 기술을 다루는 작가들의 태도를 설명하는 것 또한 물화보다는 물신화에 가깝게 볼 수 있지 않나- 주체적 수준에서 예술의 역할과 소명에 관한 서술은 거의 등장하지 않은게 아쉽다. 그 부분 또한 염두에 두면 좋을 거 같고, 한국 미술에 대한 케이스 스터디 등이 추가되어서 그 대목이 초반부에 등장한다면 위에서 나온 지적들을 어느정도 디펜스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보다 독자를 잘 고려하면 좋을 거 같다. 이렇게 많은 주제들이 등장하는 글은 독자층이 잘 분간되지 않는 거 같다.- 비판의 지점을 이렇게 좀더 구체화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 현대음악은 사장되고 클래식은 아직 번성한다. 소설 또한 필자가 썼듯 기표와 기의가 분리된 작품은 잘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미술에선 왜 그와 같은게 나타나는가를 살펴보면, 미술작품이 일찍이 기업의 투기 대상이었기에 시장논리와 결합하면서 대중의 취향과 충분히 유리될 수 있는 조건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구체적인 수준에서는 작품의 유물론적 형식 자체가 중요해진다.-사회구성체의 수준에서 각 작품의 등장을 상론할 필요에 대해 동감한다. 예컨대 네덜란드의 식민지령이었던 인도네시아에서는 식민지배 자체로 인해 풍경화가 20세기 전반까지 유행했지만, 자체적으로 아카데미, 살롱을 중심으로한 유럽식의 전통은 아예 없었다. 동시기의 다른 국가들에서 어떤 예술사조가 등장했는지를 살필때도 이와 같은 사회구성체 수준에서의 조건들이 결정적으로 중요한데, 자본의 논리 자체에서 예술의 구체적인 변화들을 연역하는 방식으로 접근한 감이 있긴 하다. 다른 지적들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동의한다.
 나. 그람시의 한국적 단층(김민정)
   1) 발표 내용(첨부 파일 참조)
   2) 토론 내용
   -시민운동과 계급운동은 분리된 범주를 갖는 것으로 설정된다. 맑스 엥겔스는 국가로부터 시민사회가 독립되었다고 말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혼동하고 있지 않나 싶다. 애초에 시민사회는 부르주아 사회 자체를 얘기하는 것이다. 그람시의 헤게모니론을 시민사회론으로 가져갈 수 있는가?- 한국에서 소비되는 그람시주의란 한마디로 엉터리다. 막상 이탈리아엔 그람시주의가 없다. 이탈리아엔 대신 톨리아티즘이 있다. 그람시 재단이 있긴 하지만 하나의 ~주의로서 성립하는 것은 톨리아티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람시의 행동과 이론은 별개의 것으로 봐야한다. 옥중수고는 그람시의 활동 자체와는 별 상관이 없다. 이탈리아 파시즘은 히틀러 10여년전 이미 나타났었고, 이때 그람시의 실천은 일찍이 무솔리니에게 진압당했고, 당시 쓴게 옥중수고이다. 그때 톨리아티는 소련으로 튀었다가 이후에 톨리아티가 돌아와 그람시와 공산당을 만들지 않는가. 이미 시기상으로도 그람시의 이론과 실천은 별개의 것이다. 물론 톨리아티즘의 내용은 그람시의 이론 상당부분의 원용이지만, 아무튼 그게 유로 코뮤니즘으로 건너오는게 문제가 되는데. 역사적으로 그람시의 개량적 해석은 이탈리아, 유럽에서도 주류라는 점을 생각해야한다. 에릭홉스봄 역시 그람시언인데, 영국 공산당이 59년-91년 간 발간한 잡지가 있고, 이때 그람시언 턴이 있었고, 앵글로 색슨쪽에서 그람시에 대한 우파적 해석이 가해지기 시작했다. 영국 공산당은 소련 해체후에 해체된다. 아무튼 혁명적 해석을 하려면 톨리아티를 비판해야하고, 이탈리아 공산당의 몰락을 추적해야 하는 것이다. 덧붙여 하먼의 그람시 해석에 크게 불만은 없으나 그의 해석에서 보이는 orthodox에 대한 집착이 운동을 망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상적인 강령주의가 아니라, 이론이 현실과 어떻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지를 봐야한다.- 구조주의, 기능주의 국가론으로 대표되는 밀리반드와 풀란차스를 비롯하여 지배블록, 헤게모니 등 실정화된 경험분석에 곧바로 적용가능한 정치이론을 만들고자 했던 그람시언들의 한국적 수용 또한 중요한 쟁점인데, 이 부분을 함께 다뤄주면 좋을 거 같다. 그들이 주장했던 바가 마르크스주의에 정치에 대한 이론이 없다는 것이었고, 마르크스주의를 경제 분과에 한한 것으로 전제했던 것에서 알 수 있듯 포스트마르크스주의로의 변화 내지 전향은 이들 작업에서도 감지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덧붙여서 박원순 죽음의 원인이 그람시에 대한 불충분한 해석의 내적 귀결은 아닐텐데, 박원순의 죽음과 시민사회운동의 패착을 그람시에 대한 개량적 해석과 연관짓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다- 그람시 텍스트에 대한 직접인용을 통해 내용을 보강하면 좋겠다.  마르크스주의 내부에서는 이와 같은 정도로도 충분히 흥미로운 쟁점들이지만, 보다 넓은 독자들을 염두에 둔다면 그람시적 텍스트와 실천이 어떻게 한국에서 생산되는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야한다.- 아나키즘이 시민사회운동에 미친 영향도 살필수 있지 않나- 좌파활동하는 세력이 한때 시민사회운동으로 대거 전향한 적이 있는한에서 시민사회노선의 그람시 해석을 비판하는게 의미가 있을수 있겠으나 지금 녹색, 환경운동 하는 이들은 마르크스주의에 관심이 없을뿐 아니라 적대적인 경우도 있다. 더불어 참여연대를 비롯한 대부분의 시민사회세력 역시 그람시로 자기네 활동을 정당화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시민사회'의 대상을 좀더 명확히 해서 비판할 필요가 있다. - 전체적으로 정리가 필요할 것 같다. 시민사회 운동의 맥락을 2002년 촛불, 2008년 촛불, 2017년 탄핵 정국으로 이어볼 수 있는데, 항상 여기서 국가권력 장악의 문제는 비어있었다. 항상 이 부분을 민주당세력에 빼앗겨온 것이다. 이런 현상을 그람시에 대한 해석의 변천과 연결하여 볼 수 있지 않을까 했다. 박원순의 죽음 이후 시민사회운동 세력 전반은 예산삭감을 두려워하고 있다. 이 부분이 아주 징후적인 것이고, 시민사회운동의 패인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5. 8월 프닉스 세미나는 아래의 포럼으로 대체하고자 하였으나 연기되었음을 알려 드립니다.

<8월 토론회: 유럽 급진좌파당 운동과 한국의 사회주의 정당>
a. 일시와 장소 : 2020년 8월 29일 토요일 오후 3시, 민주노총 13층 대회의실
b. 주최 : 현대사상연구소, 정치경제학연구소 프닉스( 각 단위 정책위원회와 공동주최를 제안함)
c. 진행 : 사회 남구현 전 한신대 교수
1) 발표 
- 발표 1 : 박석삼 : 현시기 좌파통합당 운동의 특수성
- 발표 2 : 이광일 : 사회주의 정치의 재구성과 2022년 대선(2007년, 2012년 사례 포함)

2) 토론 4~5명
- 원영수 노동자교육센터 운영위원
- 김동성 공공운수현장활동가 회의 운영위원
- 신재길 노동전선 정책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