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19일 화요일

10월 정치경제학 연구모임 결과 보고와 11월 모임 안내

1. 일시: 10월 16일 토요일 15시- 18시

2. 장소: 프닉스 연구실/구글 Meet 병행

3. 참석자: 정0영, 김민정, 김장민, 하태규, 정윤광, 손0아, 황정규, 원영수, 김재원, 임0빈, 김승연, 정강산, 신0길 등 (총 14명)   

4. 발표와 토론

가) 황정규(사회주의자 편집국장)_"청년 마르크스와 노동자 자기해방 사상"


발표내용: 발표문 참조


토론내용: -1,2장을 번역자께서 다뤄주신거 같다. 3,4장에서는 당 건설에 대한 검토가 나오는데, 마르크스 사후에 레닌, 로자, 그람시, 트로츠키, 체게바라까지 이 사람들이 어떻게 계급의식을 파악하고 특히 혁명기에 당과 대중간의 관계, 당의 내부구조 등이 뒤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을 해줄 수 있나


3장 당이론은 자기 해방으로서 사회주의를 보면 사회주의자와 사회주의 당의 역할도 다르게 접근하게 된다는 게 3장에서 공산주의자 동맹을 만들고 이런 과정 속에서 나오는 이야기이다. 이전까지는 당에 관해 설명할 때 노동자들을 이끌고 지도하는 역할로 규정했다면, 사회주의 당의 역할은 노동자계급의 자생적인 사회주의 의식을 과학적이고 명확한 사회주의 의식으로 전환시키고 그들의 투쟁을 지도하는 역할이라는 것. 4장에서는 제1 인터네셔널이나 70년대 이후의 일들에 더해서 레닌에서 체게바라까지 설명하는데 전체 수준에선 참고할 만한 수준이고, 핵심은 1,2,3장에 다 나와 있는거 같다. 원래 책 자체도 프랑스어 판에는 1,2,3장만 있고, 4장은 나중에 쓴 것. 레비가 나이가 들며 필력이 약화된거 같다는 인상인데, 이번 한국어판 서문에도 레비가 쓴 내용이 좀 정리가 덜 된거 같다 싶었다. 전체적으로는 1,2장 내용으로도 당이론까지 도출될 수 있는 듯 하다.


- 노동자들의 자기해방 사상과의 접속 속에서 어떻게 급진적 자유주의자에서 공산주의자로 이행할 수 있었는지 맑스의 궤적을 잘 담고 있는 책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거 같다. 지금에야 운동의 대원칙이 민중의 해방은 민중 자신의 힘으로라는 합의가 있지만, 마르크스 시대에는 그런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는 역사적 맥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원래는 노동자들이 정치투쟁을 해봤자 의미 없다고 하는 기조가 많았다. 프루동 같은 경우에도 노동자들의 정치투쟁에 회의적이었고. 근데 여기서 반대로 노동자들이 정치의 주체가 되어야 하고 지배계급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게 마르크스. 이 점에서도 기존의 바뵈프주의나 블랑키주의 등의 사회주의 세력과 차별점이 생기는 것. 기존 세력들은 노동자 대중과 선각자적 인물을 분리시켜 봤던 것. 여기서 핵심이 되는게 환경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부르주아적 인식이다. 즉 인간은 환경의 산물이며, 이 환경을 잘 조성해주면 새로운 인간이 생긴다는 건데, 여기서 환경을 바꿔주는 사람은 따로 있는거다. 블랑키주의도 마찬가지로 노동자를 대변하는 세력이 권력을 잡아서 노동자들을 교육하는 독재를 해야한다고 보는 것. 노동자와 프롤레타리아트의 관계에 대해 공산당 선언에서 얘기하는 것도, 노동자계급의 일부가 가장 선진적인 입장을 표명하며 운동의 전망을 대변하는 세력이라고 얘기를 한다. 코민테른에서도 마찬가지로 당에 대한 규정에서도 보면 선진적인 노동자계급의 일부라는 점을 항상 강조. 당이 노동자계급과 분리된게 아니라 하나여야 한다는 거고, 궁극적으로는 혁명의 주체는 사회주의자나 당이 아니라 노동자계급 자체가 되어야 한다는 거.


-결국 한국의 사회주의, 노동운동을 발전시키기 위해 이런 논의를 하는건데, 한국의 노동운동을 보면, 특히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볼 수 있다. 그게 전국적인 규모였는데 그 다음에 전노협이 만들어짐. 그게 여러 세력들과 함께 민주노총을 만들고, 민주노총이 다시 민주노동당을 만들었다. 근데 이게 시간이 지나면서 갈라지고 변질되게 되었고, 프티부르주아 정당으로 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이걸 반성하고 고민하면서 토론을 이어가는게 좋지 않을까 싶다.


- 154 페이지에 소외와 사적소유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부분이 있는데, 맑스는 경철수고에서 사적소유가 소외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고 표현했다. 그걸 신과의 관계에서 유비하기도 한다. 인간이 신에 빠질수록 더욱더 인간은 소외된다는 것. 근데 여기서 레비의 진술은 다소 애매한 듯 하다.


-이 시기 맑스는 아직 정치경제학보다는 포이어바흐 비판에 열중할 때라 소외된 노동의 결과로 사적소유가 발생한다고 봤던게 아닌가?


레비는 사적소유가 결과처럼 나오는 걸 비판한 것.


-183페이지에 두 번째 문단 시작부분, 신성가족의 구획이 유물론적 공산주의와 비판적 사회주의 사이에 그어진다고 얘기하는데, 이게 뭔가?


유물론적 공산주의는 공상적 사회주의까지도 포함하는 넓은 개념으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사회주의자체를 노동자계급의 사상이라는 것은 투쟁의 결과이지 선험은 아닌거 같고, 이걸 인정하는게 맑스나 레닌의 주장에 가깝다고 본다. 독점자본이 형성되는 시기에는 또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노동운동 자체가 사회주의 이념으로 발전할 수 없다는 데에 맑스 또한 동의한거 같다. 여러 문헌들이


-맑스나 레닌이나 공산당 선언에서도, 계급이 끊임없이 분화되고, 노동운동 자체가 사회주의 운동이 될 수 없다는 것은 객관적 사실인 듯 하다. 노동계급과 사회주의를 일치시키는건 무리아닌가. 경제투쟁에서 정치투쟁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는걸 증명하는 얘기가 무수하다.


공산당선언에 보면 프티부르주아 지식인들이 노동자들의 입장에 서게 됨으로써 혁명적 정세에 합류하게 된다고 얘기한다. 즉 지식인들이 외부에서 선진성을 주입하는게 아니라는 것. 이런 주장은 노동계급 운동에 대한 평가에 대한 쟁점이기도 하다. 사실 당대의 자생적 노동운동은 엄청난 발전에 있었다. 그래서 레비는 맑스가 파리에서 노동자들을 접하고, 그들의 선진성을 목도하면서 자신의 급진자유주의 노선을 결정적으로 전환하게 된다고 지적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자기해방사상이 맑스 초기의 문제설정을 벼리는데에서 결정적이었다는 점을 잘 논증한 책인거 같다. 또한 이 책의 중요한 기여는 프랑스 공산주의자들이 맑스 사상의 형성과정에 어떻게 영향을 주게되는지를 잘 논증한데 있는거 같다. 한 가지 문제제기를 하자면, 정치경제학비판 서설에서는 여전히 추상적이고 철학적인데에 머물러 있다는 말을 하는데 이 부분은 각주에서도 알튀세와 유사하다고 인정을 하고 있다. 인식론적 단절테제를 말하는건데, 근데 실제로 그렇게 볼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몇 개월 사이에 완전히 새로운 체계를 정립했다는 게 과연 타당할까? 경철수고서 맑스가 조야한 공산주의 완전한 자유주의 등의 3가지 공산주의의 구분을 한게 여전히 포이어바흐에 머물러 있다고 보는 입장이 또 있는데, 이 또한 경철수고 평가를 좀 박하게 하는거랑 관련되는거 같다. 레비가 잘못해석을 한건지, 번역의 문제인건지 싶다.


경철수고에 대한 평가는 레비가 좀 대강 처리하고 넘어간 대목도 있다고 생각한다.


-레닌적인 의미의 전위와, 맑스가 말한 당의 의미는 말이 많이 다른데, 레비식으로 나가면 오해의 여지가 있을 거 같다.


레비의 해석에서 특징인거 같다. 공산당선언 4장에 나오는 내용을 많이 설명을 하는데, 이런 방식을 영국과 미국 등에서 정치적 노동자들과 기존 조직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할 건가 하는 문제가 생기는거 같은데, 아마 이 부분은 자기가 처한 현실적인 문제와 관련해서 얘기를 한거 같다.


-‘사회주의자’는 의회를 통해서 사회주의 혁명이 가능하다고 보는 단체 아닌가?


경우에 따라선 의회를 통해 혁명 이전의 단계까지 갈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데에 가깝다. 이 책과 관련해서 말하자면, 차티스트들의 의회 당선에 맑스가 축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니까 맑스도 부분적으로 의회를 유효하게 봤던 것.




나) 원영수(프닉스 연구위원)_"맑스주의 : 이론과 실천의 역사와 현 상황"


발표내용: 발표문 참조


토론내용: 


-오스트리아 맑스주의가 1800년대 이후로 되어있는데, 오타인가? 또 동독 맑스주의는 동독이 끝나면서 완전히 끝났나? 김성구 교수가 동독서 유학을 한걸로 아는데, 이게 완전히 끊겼다고 볼 수 있을만큼 유산이 없는건가. 


끊겼다고 봐야 될 거 같다. 현재 뒤링케와 로자룩셈부르크 재단을 보면 그 부분이 어느정도 계승되었지만 사실 . 뒤링케는 분파를 허용하기에 오소독스 스탈린주의까지 포함을 시켜주긴하나, 오스트리아 맑스주의 부분은 1880년대 이후가 맞다.


-한국의 맑스주의가 없다는게 정확히 어떤 의미인가?


오스트리아 맑스주의는 독일사민당과 함께 나왔는데, 맞냐 틀리냐를 떠나서 유효한 세력으로 거듭났고, 일본과 강좌파와 노동파도 마찬가지. 근데 한국은, 맑스주의라고 여러 가지 실천을 하고 있는데, 즉 주의자는 있는데, 독자적인 주의는 없지 않나 하는 것. 80년대에는 한국의 특수성을 비롯하여 여러 맵핑을 하려는 시도가 있었는데, 지금은 더욱 어려워졌다. 나는 한국적 맑스주의가 없다고 보는데, 예를 들면 게바라주의같은 경우, 그에 동반되는 실천이 존재하는 것. 물론 브라질, 남아공, 남한을 비롯해서 68 이후의 흐름에서 공장으로 진입하는 맑스주의 세력들이 있었지만, 그들이 어떤 이론적 결실로 나온적은 없는 듯 하다. 즉 이런 부분들을 감안해서, 보다 집단적인 이론-실천의 맵핑이 필요하지 않나.


-한국에 그 정도의 괄목할 흐름이 없다는건 인정하나, 현재 노동당, 변혁당 등의 세력에서 사회주의 대중화 관련한 연대를 모색하고 있지 않나. 물론 빈약하긴 하나. 현재 자본주의가 망해가는 것에 대해서는 다들 인정을 하고 있지만, 그 대안을 실제로 제시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굉장히 맑스주의가 다변화, 파편화된 상황에서 소련- 동독이 포기한 메가는 이제 독일이 가져가게 되었고, 현재 역사유물론 프로젝트(historical materialism)가 있다. 뿌리는 오픈 맑시즘이나, 잡지와 단행본을 내온지가 약 10년이 넘었다. 최소한 인터네셔널하게 얘기하려면 지금 번역된 이 아티클 수준은 얘기해야 할 것이라는 판단이다. 최근 국제 컨퍼런스도 어마어마하게 열리는데, 한국에선 딱히 관심도 없고 참여할 역량도 없어보이는게 현실이다.


-최근 사회주의의 발전을 가로막는 요소에 대해 ‘사회주의자’ 내의 강의에서 얘기한적 있는데, 여기서 분단이 한편으로 크게 작용한다. 좀 편하게 맑스에 대해 얘기하고 해야하는데, 그게 분단 상황의 자기검열을 통해 잘 되지 않는 것. 나아가 정말 국제적으로 좋은 연구가 많이 나오는데, 여전히 80년대의 알튀세르나 발리바르의 작업에 천착해서 변화된 논의 지형을 안따라가는 것도 안타깝다.


-자율주의의 맥락에 대해 좀 구체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나.


오페라이스모에서 아우토노미아가 나왔고, 여기서 대장이 네그리였고, 국내선 조정환선생이 네그리 후기저작 위주로 많이 번역했다. 정신을 얘기하자면 아래로부터의 독립적인 흐름을 강조하되 노동계급중심성을 강조하는 흐름. 68당시 숙련직 공산당 노동자들과 남부 비숙련 노동자들이 올라오면서 서로 대결하는 계기가 있는데, 오페라이스모는 여기에 큰 뿌리를 두고 있다. 한국도 어느정도 유사성이 있다. 근데 역사적으로 70년대 계속 하다가 안되니까 국가의 심장을 치자는 흐름하에 관료들을 납치해서 총으로 쏘고 그러기도 했다. 80년대에 네그리가 이쪽 관련된 그룹의 총책으로 몰려 프랑스로 튀고, 제국도 쓰고 그랬던 것. + 중소논쟁이 벌어지면서 흐루쇼프가 자본주의체제와의 평화적 공존을 얘기하고, 이게 반자본주의 노선과 반대되니 전세계 여러 운동가, 학생들이 이를 비판하나, 공산당 라인은 이걸 따르게 된다. 그래서 여기서 좌파 내에서 반공산당 계열이 형성되고, 트로츠키주의는 전부터 있었지만, 마오주의같은 경우에는 여기에 대립하면서 핵무기를 써서라도 자본주의를 박살내야한다고 소련과 대립하게 되는 것. 그래서 68당시에 마오주의 세력이 강했던 것. 프랑스, 독일에서 그랬고 미국도 신좌파 내에서 그런 흐름이 있었고, 근데 마오주의도 수십개의 정파들이 있어서 이들이 전부 베이징에가서 정통성을 주장하기도 했던 것. 호치민 같은 경우에는 자율적인 흐름을 가져갔다.


-네그리의 경우 현대의 노동형태는 가치를 생산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사회적 공장’테제가 나오는거고, 공장이 아니라 전 삶의 영역에서 가치가 생산되고 있다는 거고.. 그런 맥락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