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26일 목요일

1월 세미나와 신년회를 진행


회원들의 행운과 마르크스주의 학문의 발전을 기원하고 있다.

지난 1월 20일 오후 영등포 사무실에서 월례세미나 정치경제학연구모임이 열렸으며, 세미나가 끝난 후 저녁식사와 신년회가 이어졌다. 세미나와 신년회에 18명이 참여했다.



1. "사회과학 방법론에 관한 논쟁: 실증주의 비판을 중심으로" (방용덕)
. 내용: 첨부 참조
. 배경: 이 논문은 이번 봄에 석사학위 논문으로 제출할 내용의 일부로서 지난 두차례에 걸친 연구모임에서의 발표와 토론을 반영하여 수정한 것임
. 토론
- 각주에 다시 각주가 들어가는 것은 너무 복잡하므로 본문으로 올리는 등의 방식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
- 서론이 아닌 본론의 목차는 참고용이고 확정한 것은 아니며 수정할 예정이다. 이번에 검토하는 것은 서론이다.
- 논점이 몀확하지 않고 서론이 여전히 너무 길다.
- 주제를 비판적 실제론의 실증주의 비판의 한계로 잡아서 이에 대한 논의들의 서베이 논문으로 하는 방식이 가능할 것이다.
- 아니면 60년대/70년대 논쟁을 중심으로 이 논쟁에 대한 서베이 논문으로 하는 방식도 가능할 것이다.
- 본론의 목차에서 보여준 실증주의의 이데올로기 함의에 대한 비판은 여전히 큰 주제이고 독자적인 논의를 전개해야 하는데는 석사논문으로는 적합하지 않을 것 같다.
- 어떤 주제를 선택하든 그것에 맞게 서론과 본론을 재구성하면 좋겠다. 본론은 서론에 이은 2장만으로 구성할 것이 아니라 2-5장 정도로 병렬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2. "<자본론> 1권 독해에서 제기되는 문제: 역사유물의 관점에서"(박승호)
. 내용: 첨부 참조
. 배경: <자본론 함께 읽기>는 성공회대에서 강의를 한 강의록을 중심으로 작성한 자본론 1권에 관한 해설서인데, 기존 해설서와 첨부 강연록에서 보듯이 차별점이 여러가지 있다. 순서를 1편 상품이 아니라 8편 시초축적부터 진행하여 역사적으로 자본주의가 출범한 배경을 이해한 뒤 논리를 이해하게 하는 방식이라서 더 쉽다. 특히 마르크스의 최후의 교정판인 프랑스어 판을 가능한 한 전부 참조하여 수정하여 반영했기 때문에 기존에 불분명하거나 오류였던 내용을 뒤집어 밝혔다.
. 토론
- 전반적으로 전문적 내용에 대한 논의들이라서 구체적으로 보고 검토해야 되겠지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 Bedürfnis(need)를 김수행 번역과 강신준 번역은 욕구, 욕망으로 번역하거나 필요와 혼용하고 있는데, 필요로 번역하는 것이 좋겠다는 주장에 대해 반론을 펴자면, Bedürfni는 사전적 의미로 봐서 필요보다는 욕구로 번역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마르크스의 관점에서 욕구도 무한정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에 의해 규정되기 때문에 한정되며 생산력의 발전에 따라 인간의 욕구가 변화되고 확대된다는 논의에서 보듯이 이런 측면에서도 욕구를 이해하고 있다. 필요는 육체적 물리적으로 너무 한정적 어감을 주는 단어라서 욕구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 재반론, 아니다 욕구와 욕망은 무한정한 개념인 반면, 필요는 육체적, 물리적 수준뿐만 아니라 사회적 수준을 포함하면서 한정되는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 온라인사이트에서 온라인 유료강의를 하고 있는데, <자본론>에 대한 대중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강의를 대중들이 들을 수 있게 주변에 널리 홍보하면 좋겠다.
. 참고: 연구소에서 저자의 책 4권을 구매하여 저자가 사인과 함께 4명에게(멀리 진주와 동두천에서 온) 전달했다.
 
3.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와 광장 민주주의"(하태규)
. 내용: 첨부 참조
. 토론
- 고대 아테네가 전쟁패배 등에서 보듯이 내부적으로 쇠퇴하고 민주주의가 타락했기 때문에 붕괴했다고 이해했는데, 이에 대한 반론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관점이 본문의 비판검토 세번째 주제인데, 이런 "쇠퇴""타락"의 주장은 데마고기라고 보인다. 왜냐하면 그런 팩트가 없는 반면, 이런 류의 주장은 소크라테스부터 아리스토텔레스까지 반민주주의자들의 논의였고 현대 정치이론에서 계승되고 있는 오해인데, 펠레포네소스 전쟁의 패배는 육전 중심이 아닌 해전 중심으로 패배 자체는 해상동맹제국의 붕괴로 이어졌지만 아테네의 영토나 인구의 손실은 전혀 없었고 과두제 쿠데타 이후 민주주의는 부활해서 80년간 최전승기로서 제도적, 사회경제문화적으로 번영했다는 것을 본문에서 밝혔다
- 노예제는 가사노예로서 있었다.
맞는 이야기이다. 노예는 각주 16에서 보듯이 전근대 사회 절반이상 다수에서 실존했고 아테네에서도 그랬지만, 그리고 본문에서 밝혔듯이 민주주의에서 역설적으로 늘었지만, 생산적으로 주력으로 착취되지는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노예제 생산양식의 사회는 아니었다.
- 광장 민주주의가 노동운동이나 기타 다른 분야의 운동들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가?
광장 민주주의로 표현한 상설총회와 추첨 형식의 민주주의는 노동운동에서도 다른 모든 분야서도 적용될 운동 방식이다. 민주노총이 상층집행부 위주로 아무리 열정과 전략을 고심하고 노력해도 노동자대중의 수동화는 막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더욱 고착화한다. 총파업, 박근혜 퇴진 등의 이슈도 항상 광장과 온라인을 통한 총회장에서 논의하고 노동자 자신들의 정책으로 결정하는 과정을 밟아야만 노동운동과 기타 모든 운동의 발전(대중자신의 변화와 환경, 사회적 관계 변화의 일치라는 혁명적 실천)이 가능하다.
- 민주주의도 계급적 관점이 중심이라야 하는데, 이 논문은 계급적 관점이 결여된 것 같다. 노예, 여성, 미귀화이주노동자의 참정권을 배제한 것이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는가? 민주주의 주체라는 사람들의 계급적 토대를 밝혀야 한다.
고대 아테네에서 노동자계급을 이야기 할 수는 없다. 전근대계급사회에서는 계급으로서 소농이 항상 중심계급이었다. 고대 아테네에서는 소규모 토지에서 정착하여 가족을 부양하며 생계를 잇고 후대를 이어간 소농이 국가와 권력과 착취로부터 해방되고 독립하여 평등하고 자유로운 연합을 결성했다는 사실(생산적 노예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착취하지도 않았던 소농계급)을 강조한 자체가 계급적 관점을 정확히 내포한 견해이다.
자본주의 민주주의가 형해화되고 전도되고 과두제의 형식으로 변화되었고,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과 영국, 프랑스, 러시아의 혁명가들과 거의 모든 정치사상가와 학자들에 의해 이런 과정이 수행되었고, 이런 과정은 노동자대중의 사회경제적 권리를 배제하려는 의도에서 그렇게 되었다는 주장 자체가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계급적 관점을 정확히 표현한 것이다.
사회주의 민주주의는 당연히 계급이 폐지된 사회의 민주주의다.
노예, 여성, 미귀화이주민의 참정권을 배제한 것은 근본적 한계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현대 민주주의도 처음에는 상당한 제산있는 시민에게만 투표권을 준데서 출발하여 20세게 중반에 와서야 여성과 흑인에게 참정권을 주게 되었고 미귀화이주민에게는 여전히 불완전하게 주고 있다. 고대 아테네는 각주 22에서 밝혔듯이 참정권에서 배제된것 외에는 여성, 미귀화이주민, 노예는 모든 사회, 경제, 문화적 생활에서 평등하게 대우받고 개성을 발휘할 수 있었고 그래서 낮은 생산력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문화적 발전을 이룰수 있었다. 또한 만약 322년에 붕괴되지 않고 계속 발전할 수 있었다면 (각주 20) 현대 민주주의와 마찬가지로 참정권이 확대될 수 있었을 것이다.
- 공납제가 오언 밀러가 제기하듯이 전자본주의에서 보편적 생산양식이고 노예제나 봉건제는 예외였다는 주장은 그래서 매우 다양해서 천차만별인 사회들을 일반화해서 공납제로 묶게 되는데 동의할 수 없다
밀러뿐만 아니라 사미르 아민, 우드, 할돈 등 세계적 석학들의 설득렸있는 논의들을 참고하면 좋겠다. 반대로 공납제가 아니라는 주장의 구체적 논의 자체는 별로 보지 못했다. 마르크스 논의에서 추상적 수준에서 생산양식과 역사적 구체적 수준에서 사회구성체를 구분하듯이 각종 전자본주의 사회의 다양한 차이들을 생산양식이 아니라 사회구성체 차원의 차이로 이해하는 관점이 가능할 것이다.
-이대 학생들의 농성이 진정한 민주주의였다고 주장하면 비웃음을 살 수 있다. 실상을 보면 총학생회를 배제했고 총회에 참가를 제한하는 등 한계가 많았다.
정확히 총학생회를 배제했기 때문에(상식에 반하여) 민주주의였다는 주장이다. 이 논문의 핵심 논지가 대의제, 관료제를 통해 작동되는 과두제를 진정한 민주주의와 대비시킨 것이다. 운동하는 주체로서 대중을 이끌어갈 능력이 있고 제도적으로도 대표인 (운동권)총학생회가 배제된 것은 분명 당사자들 입장에서 민주주의가 아닌 반민주주의라고 느끼겠지만, 이런 과도적 혼란을 통해서 진정한 민주주의로서 상설총회와 추첨의 원리가 (대중당사자들도 모르고 그랬겠지만)관철되었기 때문에(물론 임시적 한정적이지만) 의미를 둔 것이다.
- kratos가 지배이고 archy가 능력이라는 정반대의 반론이 가능하다.
archy는 주요한, 우두머리 같은 의미로서 능력이라기 보다는 그래서 공직독점을 의미하고 그래서 monarchy는 한명이 공직을 독점하는 군주제, orgarchy는 소수가 독점하는 과두제를 의미한다. kratos는 지금은 지배로 이해해도 무방하지만 당시 아테네에서는 사물을 처리하는 능력의 의미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대 아테네인들은 자신들의 체제를 다수가 지배하는 polliarchy로 명명하지 않고 demos+kratoria로 명명했다. 즉 인민의 능력이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실제로 지배였기 때문에 의미가 변화되었을 것이고 다수지배라고 스스로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칭하였지만 출발 당시에는 이런 의미를 먼져 가졌다고 이해되며 이것 자체가 의미심장하다는 것이다. 각주 10Ober의 논문 참조할 수 있다.
. 제안: 시간 부족으로 3-5장은 제대로 발제하고 논의하지 못했는데 한번더 할 수 있겠다.